프랑스 문화 예술과 프랑스 문학

서론

1990년대 이후 대학들은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프랑스 문화에 관련된 다양한 강의를 개설했습니다. 특히 불어불문학과에서는 ‘프랑스 문화의 이해’나 ‘프랑스 문화와 예술’과 같이 포괄적인 주제의 강의뿐만 아니라 ‘프랑스 영화’, ‘프랑스 미술’, ‘프랑스 지방 축제’와 같이 세부적으로 특정한 주제를 다루는 강의도 마련되었습니다. 또한 ‘인상주의 이해’와 같이 특정 예술 사조를 다룬 학문적인 강의도 개설되었으며, 프랑스의 정치, 경제, 사회에 대한 강의도 제공되었습니다.


이른 바 교양 강좌로 분류되는 이러한 과목들이 개설된 배경에는 현대의 인문학 위기에 대한 집단적인 대응이 있습니다. 이러한 강의들은 인문학의 위기에 대처하고자 하는 현실적인 타협책으로서 개설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강의들이 위기를 맞이한 현실과 타협한다 할지라도, 불어불문학과와 인문학 전반에 필요하며 인문학의 위기가 일어나기 전부터 존재해야 했던 필수적인 강의임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인문학의 위기가 일어나기 이전에 불어불문학계에 속한 학자들은 이미 이러한 강의를 통해 인문학의 위기를 예견하고 대응하는 방법으로서 채택해왔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학자들이 인문학의 위기를 넘어가기 위해 불어불문학을 단순히 인문학의 한 방편으로만 취급하거나, 프랑스 문화와 예술을 과도하게 강조하며 불어불문학을 고발하는 데에 치중한 것은 지양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불어불문학을 연구하고 강의하는 행위의 필요성과 정당성에 대한 확신을 얻기 위해 논의를 통해 지속적으로 고민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연구와 강의에 필요한 보다 체계적인 방법들을 모색하고 프랑스 문화와 예술이 불어불문학 연구와 강의의 중요한 부분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과목은 단순히 외부 상황에 대응하는 수단이 아니라 자체적인 필요성과 정당성을 인정받아야 하며, 이를 통해 활성화되어야 함을 강조해야 합니다.

발자크의 알려지지 않은 걸작과 졸라의 작품의 프랑스 미술

발자크의 “알려지지 않은 걸작”을 읽을 때, 니콜라 푸생이나 그의 작품에 대한 지식은 발자크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는 발자크의 짧은 소설에서 푸생이 화가가 되려는 젊은 화가 지망생으로 등장하면서 끝나며, 푸생의 작품 세계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푸생은 자신의 애인을 모델로 제공하는 초라한 인물로만 등장하며, 발자크의 소설에서 그의 작품 세계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없습니다. 푸생은 이미 유명한 화가로, 발자크가 쓴 이 소설에서는 푸생에 대한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또한, 다른 화가들인 프란츠 포르부스나 프렌호페르 등에 대한 지식도 소설을 읽는 데에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더욱이 발자크는 현실을 기반으로 소설을 쓴 것이 아니라서, 사전 지식이 없는 독자들은 혼란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작품 속에서 발자크는 프렌호페르의 “이집트의 마리아”라는 작품을 언급하며 비판하지만, 이 작품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작품입니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대가가 현대 추상화를 연상시키는 ‘알려지지 않은 걸작’을 그릴 때, 이 걸작은 17세기 초와 19세기에 쓰여진 소설의 배경과 300년, 100년의 시간적 간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통해 1924년에 피카소가 “화가와 모델”에서 직접적으로 영감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습니다.

20 세기 프랑스 회화와 소설의 언어

발자크와 조라라는 여인의 누드를 그리지 못해 자살하는 주인공을 통해, 앞서 살펴본 대로, 새로운 재현 개념을 시사하는 그림들을 소설 속에서 발견했습니다. 그들이 그리려고 했던 여인의 누드는 예술 자체를 상징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두 작가는 소설의 언어 자체에 대한 미학적 실험을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발자크와 조라의 소설들은 전형적인 소설, 즉, 알랭 르브레가 소설론에서 비판한 현실주의 소설이자 심리 분석적인 소설들이었습니다.

알랭 르브레가 제시한 글이 나온 지 거의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누보로 망은 수많은 소설들 중 하나일 뿐이며,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하고 있음이 사실입니다. 누보로 망의 영향력이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해도 대부분의 소설은 여전히 19세기 방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보로 망은 소설의 언어와 재현 개념에 대한 가장 근본적이고 혁신적인 제안이었습니다. 1947년, 사르트르가 창조한 신조어처럼, 누보로 망은 소설을 부정하는 “반소설, anti-roman”이었습니다. 누보로 망이 일으킨 이 격렬한 혁신은 문학의 재현 개념을 처음부터 다시 살펴보게 하는 계기를 제공했습니다.

맺으며

우리는 이제까지 프랑스 문화 예술과 프랑스 문학의 관련성을 현실 재현 개념의 변화를 중심으로 몇 편의 소설과 미술 작품을 통해 살펴보았습니다. 서론에서 언급한 대로, 1990년대 들어 크게 각 대학의 불어불문학과에서 많이 개설하고 있는 프랑스 문화와 예술은 강의에 앞서 학문으로서 연구되는 절차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한국 불어불문학 관련 학과들이 처해 있는 실정이나 연구자들의 여건은 이런 이상적인 바램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프랑스 문화와 예술이 종합적 성격을 띤 분야이므로, 그 접근 역시 불문학이나 불어학 전공자들만으로는 접근하기 쉽지 않은 분야입니다. 그러나 상황이 어떻든, 우리는 프랑스 문화와 예술을 연구하고 강의할 때 다음 두 가지 근본적인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첫째로는 너무 쉽게 사용되는 문화의 개념과 그것의 역사적 변화 추이에 대해 물어봐야 합니다. 둘째로는 과연 문학을 포함한 예술이 교육과 강의가 가능한 것인지를 비롯해, 가능하다면 어떻게 가능한 지를 원론에서부터 되물어봐야 합니다.

우리가 알기로는 문화라는 단어가 생겨나 학술적 개념으로 처음 정착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중 엽 프랑스 계몽주의 때부터이며, 그 후 이 문화 개념은 부르주아 지식인들의 관계로의 진출이 차단된 독일로 들어가, 부르주아 지식인들이 정신적이고 관념적인 측면에 대한 취향과 연구를 자신들만의 영역으로 삼으면서 독립성을 획득했습니다.

문화 개념이 사회학이나 문화 연구 분야에서 보여준 역사적 추이는, 좋든 싫든 세계화를 받아들여야 하는 오늘날의 한국에서 비단 프랑스 문화와 예술 분야만이 아니라 정치, 경제 전 영역에 걸쳐 깊게 연구해야 할 주제일 것입니다. 불어불문학이 맞은 위기 역시, 그 일부는 이 세계화 때문에, 미국화 때문에 초래된 것이라 할 때, 문화 개념에 대한 고찰은 사회학의 전유물이 될 수 없으며, 사회학적 사고만을 따라 문화를 규정하거나 접근할 수도 없습니다. 필수적인 과정이긴 하지만, 문화와 예술에는, 우리가 살펴본 대로, 사회학자들의 담론만으로는 포착될 수 없는 다른 부분이 존재합니다. 오래 전부터 사회학자들이라면, 70여 개가 넘는 엄청난 수의 불어불문학과가 개설된 한국에 불어 원서를 취급하는 서점이 없다는 기형적인 현상 정도를 의미있는 징표로 다룰 수 있을 것입니다.

프랑스 문화와 예술의 강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우리는 못 지않게 심각한 고찰을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 우리는 68혁명 직후인 1969년, 스트라스부르에 모여 솔직하게 이 문제를 논한 프랑스 문학 교육자들처럼 별도의 모임 같은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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